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장동·위례 개발 비리 연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정영학 녹취록’ 이상의 구체적 물증을 확보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대장동 수사의 ‘스모킹 건’ 역할을 해온 이 녹취록의 신빙성을 곽상도 전 국회의원 뇌물수수 혐의 사건 1심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영학 녹취록’ 곳곳에는 이 대표 측의 배임, 부패방지법 위반(현 이해충돌방지법), 부정처사 후 수뢰 혐의 정황을 담은 민간업자 진술이 나온다.
남욱 변호사는 2013년 4월 정영학 회계사에게 “대장동 사업은 어떤 방법으로든 성공시켜야 한다. 내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대장동 사업)을 그 전에 터뜨릴지 그 후에 터뜨릴지 고민해서 어떻게 하면 너(남 변호사)도 돈벌이가 되고, 이익을 극대화하고, 시장님(이 대표) 재선을 위해 도움이 되는지 서로 상의하자”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말을 전했다.
검찰은 이같은 녹취록 내용과 남 변호사, 유 전 본부장 등의 ‘전언’을 핵심 근거로 이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구속기소했고, 이 대표를 수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곽 전 의원 사건의 1심 재판부가 녹취록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남 변호사와 유 전 본부장의 진술도 대부분 ‘전언’이거나 ‘전언의 전언’이다. 이 대표의 혐의를 입증하려면 전언 이상의 증거가 필요해 보인다.
검사 출신인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9일 YTN라디오에 출연해 “정영학 녹취록의 증명력이 고스란히 다 부정됐다. 앞으로 대장동 수사에도 계속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정영학 녹취록이 중요한 골인데 이게 빠져버리면 대장동 수사가 자전거에서 체인이 빠진 것처럼 헛돌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지금까지 그 녹취록을 근거로 해서 ‘측근들에게 준 돈은 결국 이 대표에게 준 것이다’라는 논리로 접근을 해왔다”며 “(재판부는) 아들에게 준 것도 아버지한테 준 게 아니라는데 그러면 김용, 정진상은 이 대표와 어떻게 결부시키는가. 훨씬 더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곽 전 의원 사건 1심 재판부가 녹취록의 신빙성을 탄핵한 것은 ‘50억원 클럽’에 국한된 것이다. 이 대표와 관련한 녹취록 내용의 신빙성까지 탄핵될 것이라고 예단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곽 전 의원 측이 돈을 요구했다는 녹취록 내용을 검찰이 증명해내지 못한 것”이라면서도 “이번 판결은 곽 전 의원에 대한 것이어서 이 대표 관련 대장동 수사 전체까지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재판부가 ‘정영학 녹취록’ (자체)에 대한 증거능력을 부정한 게 아니라 일부 내용에 대해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수사팀은 일방 당사자의 진술이나 특정 증거에 의존하지 않고, 이를 통해 확인된 여러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10일 서울중앙지검에 2차 출석한다.
이보라 기자 [email protected], 강연주 기자 [email protected]
ⓒ경향신문(http://www.khan.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