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세로 20㎝의 정사각형 스테인리스 패널 1540개가 줄지어 공중에 매달려 있다. 패널은 바람이 불 때마다 찰랑거리며 소리를 내고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패널을 채우지 않은 공간은 십자가가 됐다. 성도들은 이를 ‘성령의 십자가’라 불렀다.
세종특별자치시 다정북로의 세종산성교회(지성업 목사)는 십자가부터 교회라는 걸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다. 바람결에, 빛을 따라가듯 세워진 교회는 2020년 시카고 아테나움 국제건축상을 받았다.
‘교회가 교회스럽지 않게’는 담임인 지성업 목사와 설계자인 유현준 홍익대 교수의 일치된 생각이다. 유현준(54) 교수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 교회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지성업(59) 목사도 “진리가 심플하듯 교회도 심플하게 가기로 했다”고 호응했다. 지 목사는 지난 3일 교회에서 만났다. 유 교수는 이틀 전 미리 만나 세종산성교회 이야기를 들었다.
허그… 품다
교회를 관통하는 단어는 ‘허그(hug)’다. 유 교수는 “곡면인 외벽은 사회를 품고 외부 처마의 공간은 수고하고 지친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교회 부지인 처마의 공간까지 바닥은 보도블록과 동일한 소재를 깔았다. 사람들이 마음 편히 처마 아래로 올 수 있도록 한 작은 배려다.
무엇보다 세종산성교회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상징하는 ‘빛’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래서 세심하게 창을 사용한다. 1층 카페 ‘허그’는 통유리 열린 공간이다. 어디서건 ‘성령의 십자가’를 볼 수 있게 십자가 뒤편도 통창이다. 중고등부, 소예배실 등이 있는 2층은 외벽에 창을 넣어 빛을 받아들인다. 예배당이 있는 3층부터는 구멍 뚫린 큐블럭을 쌓아 경건함은 지키되 갑갑함은 해소했다. 4층과 5층 옥상은 묵상과 친교, 지하 1층은 유초등부 공간이다.
옥상 외벽에 덧댄 직선의 메탈 루버(폭이 좁은 판을 비스듬히 일정 간격을 두고 수평으로 배열한 것)는 외벽의 곡면을 두드러지게 하면서 빛을 받으면 콘크리트벽에 사선의 그림자 문양을 만든다.
예배당에서 밖으로 연결되는 외부 계단도 빛을 사용했다. 이 계단은 지 목사와 유 교수가 좋아하는 공간이다. 교회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데서 ‘골목길’이라 표현한다. 빛을 사용한 건 가로로 긴 시멘트 벽돌로 채운 계단의 우측 벽이다. 유 교수는 “접착제인 몰타르를 벽돌 좌우엔 사용하지 않고 위아래에만 썼다. 몰타르를 깊숙이 파 빛에 따라 그림자가 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빛과 함께 계단은 경건함을 배가시키는 공간이다. 내부 계단 중 하나는 벽면을 거울로 처리해 자기 모습을 마주한 채 묵상하며 올라가도록 했다. 다른 쪽 계단은 층을 오를 때마다 색을 달리해 다양한 삶을 사는 우리를 생각하게 했다.
그렇게 들어선 예배당은 경건함과 함께 리듬감이 느껴진다. 두 개 면은 하얀 벽돌을 30도 각도로 비틀어 사선으로 쌓았다. 그렇게 돌출된 벽돌은 가장자리 천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아 그림자를 드리운다. 음향 때문에 벽돌을 넣지 않은 공간도 리듬감에 일조한다.
유 교수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말씀하셨듯 예배당도 야외 느낌이 들도록 외부 마감재를 가져왔다”면서 “지루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목사님 요청에 따라 규격화된 벽돌 대신 동남아산 저렴한 천연석을 자른 거친 벽돌을 사용했다”고 강조했다.
흡음판으로 마감한 또 다른 벽면도 높낮이를 달리한 음향판을 덧대 물결 모양을 이룬다. 유 교수는 “똑같은 깊이로 음향판을 대면 난반사돼 잡음이 생긴다”고 했다.
사각형의 교회 용지는 마름모꼴로 활용했다. ‘성령의 십자가’가 걸린 교회 입구는 도로 쪽 사각형의 모서리고 맞은편 모서리에 예배당이 들어섰다.
미술을 전공한 김정빈 사모의 아이디어도 곳곳에 적용됐다. 예배당에 걸린 가느다란 청동 십자가와 내부 계단벽 색은 김 사모가 유 교수와 논의해 결정했다. 묵상 공간인 4층 외부 테라스엔 이끼와 야생초를 심어 소박하게 생명을 표현했다. 깔린 타일을 따라 걸으며 묵상하다 보면 옥상인 5층으로 연결된다. 옥상에 심은 포도나무는 여름이면 열매를 맺고 그늘을 만들어 성도들의 휴식 공간이 된다. 이 포도로 만든 포도주는 3년이 지나면 성찬식에 사용할 예정이다.
건축 과정도 놀랍다. 담임목사와 성도들, 유 교수 모두 생각을 같이했다. 잡음은 없었다. 덕분에 누구나 올 수 있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결실도 보았다. 지 목사는 “무속인 한 분은 십자가 스테인리스 부딪히는 소리에 이끌려 교회에 들어와 세례도 받으셨다”고 말했다.
교회, 세상을 품는 방법
세종산성교회는 대전산성교회의 캠퍼스다. 대전산성교회는 1956년 당대마을이라는 무당 마을에서 첫 예배를 드린 뒤 여러 차례 건축 과정을 거쳤다. 그러다 성도가 많아지면서 공간이 부족해졌다. 지 목사는 “교회 옆 부지를 확보해 공간을 키우자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교회가 커진다는 건 비용 부담으로 연결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건축을 위해 선교와 구제를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데 결론을 내리고 캠퍼스 개념을 도입했다.
지 목사는 “교회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자고 생각했다”며 “세종이 떠올랐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장로들도 공감했다”고 전했다.
허허벌판인 세종에서 종교부지로 나온 곳을 찾기 시작했다. 대전과 가깝고 자연이 보이는 곳이 조건이었다. 마침 조건에 맞는 매물이 나왔다. 지 목사는 “매물로 나온 교회의 목사님은 이단이 거액을 제시하며 접근하자 고민에 빠진 상태였다”면서 “3주간 새벽기도하고 마지막 주 아내와 금식기도를 하는데 마지막 날 우리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건축 공모에 나섰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믿음 있는 건축가, 교회를 한 번도 짓지 않은 건축가였다. 지 목사는 “바로 유 교수님이었고 교회 건축 철학까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 좋은 설계자”라고 말했다.
대전산성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예배할 공간이 아님에도 건축 기간 내내 함께했다. ‘111운동’엔 2433명이 참여했다. 입당 1000일 전부터 매일 1분씩 기도하며 하루에 1000원씩 모으자는 것이었다. 건축 헌금은 받지 않았다. 건축 현장엔 기도 공간인 컨테이너를 설치했고 기도를 약정한 사람들이 매주 한 번씩 와서 기도했다.
숨은 이야기도 전했다. 강대상이 들어설 3층에서 수직으로 연결되는 가장 낮은 곳, 지하 3층에 땅을 팠다. 그곳에 대전산성교회 십자가 앞에 놓인 성경책과 111운동에 참여한 성도 리스트, 기도한 성도들 사진을 묻었다.
그리고 1년 뒤인 2018년 4월 첫 예배를 드렸다. 현재 두 교회는 대전과 세종에서 함께 예배한다. 매주 대전과 세종을 오가던 지 목사는 현재 매월 셋째 주에만 세종에 온다.
지 목사는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메시지를 전하도록 매주 설교 담당 목사와 논의하며 다듬는다”고 했다.
지 목사의 다음 생각은 분립개척이다. 지역사회와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려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바로 ‘상생을 위한 불편함’이다. 지 목사는 “주일엔 식사를 대접하지 않는다. 그걸 감수한다면 우리 교회에 오시라는 뜻”이라며 “지역 카페를 위해 에스프레소 기계도 없다. 핸드드립으로 내리는 아메리카노뿐이고 다른 카페에 없는 군고구마, 보리빵만 저렴하게 제공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인터뷰 말미 건축 후 첫 예배 때 울뻔했다는 고백을 했다. 그는 “1989년 1월 소망교회 대학부 겨울 수련회에서 내 삶의 목표를 하나님께 물었다. 그때 받은 응답이 건축 설계를 통해 하나님나라 확장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는데 교회 건축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서 “첫 의뢰가 산성교회라는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email protected]